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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1일 - 법궤에 손을 대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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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10-21 12:37 조회13,513회 댓글0건

본문

2020. 10. 11. 주일설교


본문 : 역대상 13장 1절 ~ 14절

제목 : 법궤에 손을 대지 말라!


  오늘 역대상 13장의 사건은 기럇여아림에서 예루살렘으로 법궤를 옮기는 과정에 일어난 불행하고 끔찍한 사건입니다. 법궤는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 거의 100년 동안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고, 블레셋이 힘을 잃었을 때 기럇여아림에 있는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진행합니다. 다윗은 100년 전 블레셋이 법궤를 돌려보낼 때를 생각해 내고 새 수레를 만들어 멍에를 메지 않은 소 2마리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아비나답 가문의 두 아들 아히오와 웃사에게 수레를 끌게 합니다. 찬양대가 찬양을 하고 3만의 군사로 호위하며 행진하였습니다. 그렇게 잘 오다가 기돈의 타작마장에 이르렀을 때 소들이 뛰면서 수레가 흔들렸고 법궤가 넘어갈 위험에 처했습니다. 그때 웃사가 흔들리는 법궤를 손으로 잡았고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법궤를 운반하는 과정에서 다윗의 실수는 무엇입니까? 첫째,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블레셋과 전쟁을 할 때마다 하나님께 의견을 묻고, 방법을 묻고,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법궤를 운반하는 일을 추진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법궤를 운반할 때는 반드시 레위인들에 메어 옮기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그 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이런 하나님의 법들을 몰랐을까요? 가령 다윗이 몰랐고, 부주의로 그랬다면 법궤에 대한 규레에 대해 정통했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뭐하고 있었을까요? 그들이 만일 알고도 그랬다면 편의주의, 편리주의, 합리주의, 지성주의의 발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고지대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사람들이 법궤를 메고 가는 것보다 수레에 싣고 가는 게 쉽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웃사를 죽이지 않고 법궤가 그대로 예루살렘에 안치되었다면 더 이상 법궤를 운반할 때 사람들이 메지 않고 수레를 사용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궤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은 누구나 막론하고 법궤에 손을 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하나님의 법, 규례, 율법, 규칙들은 존재의미를 상실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편리, 편의, 합리, 지성에 따라 해석되고 적용되어 하나님이 세운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법궤는 궤 안에 하나님의 법, 율법을 새긴 석판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법궤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법으로 언약을 맺어 언약궤라고 불렀습니다. 법궤에 손을 대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본래의 뜻, 본질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그런 뜻입니다. 손대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손대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편리주의, 편의주의, 합리주의, 지성주의 운운하며 법궤에 손을 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배의 문제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원래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비대면예배였다는 말을 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코로나시대 비대면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이고 지역사회를 위한 교회의 최소한의 도리라는 말도 했습니다. 어떤 교회는 ‘교회가 죄송합니다!’라는 프랭카드를 교회 앞에 걸기도 했습니다. 어떤 신자들은 코로나시대에 비대면예배는 상식이고, 교양이고, 배려이고, 이웃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비대면예배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몸이 아파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 직장이나 삶의 여러가지 이유로 교회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 요즘 직장에서 교회에 나가지 말라고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갔다 확진자가 되면 해고되고 구상권까지 청구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신상의 안전을 위한 사람들, 중동지역이나 중국이나 이슬람지역에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 자신이 사는 지역에 교회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비대면예배가 요긴하고 필요한 예배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르게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인간의 편의주의, 편리주의, 합리주의, 지성주의의 발로 일 수도 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비대면예배의 주장은 법궤를 만진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목회자들과 교회단체들은 차별금지법 통과를 찬성하고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만지지 말아야 하는 법궤를 만진 것입니다. 다윗은 문제가 터진 후에 3개월 동안 문제를 숙지하여 원인을 찾아냈고 본질을 회복했습니다. 위기 속에서 본질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코로나시대에 나는 하나님의 법궤에 손을 대고 있는 일이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십시오. 신앙생활에서 아니 우리 인생길에서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법대로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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